2024 9주차 회고 | 혼자
엄마와 동생이 놀러왔다. 이것저것 챙길게 많아서 지난 주말 주간회고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걸 화요일인 오늘에야 깨닫고 황급히 글을 쓴다.
갑자기 가족들이 온다고 했을 때 아주 솔직히,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이 더 많이 들었다. 갑자기 발생하는 3명치 비행기 표값, 호텔비용, 여행하면서 쓰게되는 교통비, 식비, 기타 잡비 등등… 학비를 내고 나서 내 잔고 사정은 빠듯한데 그렇다고 가족들이 왔는데 베를린에만 머무를 수 없어 질렀다.
독일 국내 여행은 관심이 없는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햇빛을 쐬러 남쪽으로 가고싶은 나. 결국 여행지는 이탈리아 남부로 정했고 그렇게 로마에 도착해서 며칠을 보낸 뒤 지금은 나폴리로 향하는 기차 안이다.
또 다시 솔직히 말하면 여행 내내 두세시간마다 화장실을 찾고, 화장실이 신경쓰여 밥도 제대로 안먹고 기운이 없어 한껏 예민한 상태에, 음식은 꼭 밥을 먹어야하고,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하는게 속상했다. 지난번 여행 때 발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겠다기에 꼭 편한 신발을 신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이번엔 발가락이 아프다고 밴드를 칭칭 감고다닌다…. 하루에 만 몇천보 걷는 여행이 정말로 그렇게 힘든건가보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반쯤 누운 상태로 앉아서 티비만 보는게 문제인 것 같다. 그렇게 매일을 살다가 갑자기 만보 넘게 걸으려니 여기저기 몸에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어제는 바티칸 투어를 했는데, 성베드로 성당에서 가이드 투어를 마치고선 둘은 힘들어 “뒤지겠다”며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내가 빨리 둘러보고 나오겠다니 분명 또 오래 볼거 아니냐며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화장실을 가겠다곤 나가버렸다.
혼자 둘러보고 나와선 밥을 먹으러 갔는데 어김없이 화장실이 어쩌구 하기에 난 참다 못해 “갑자기 와서 나 계획도 않던 삼사백 쓰게 만들고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보는게 말이 되냐, 내가 대단히 화를 참고있는 것만 좀 알아달라” 고 말했다. 아주 차분하게.
그런데 그게 기분이 매우 나빴는지 이후로 말도 않고 의견을 물어도 알아서 하라는 엄마. 이후 런던 여행도 다 필요없고 그냥 한국 집으로 가겠단다.
그리곤 다음날인 오늘은 어딘가 꿍한듯 할말은 하며 다시 원래처럼 대화를 한다. 뭐가 마음에 안들면 조목조목 정리해서 전달을 하고 나도 마찬가지로 나의 상황을 정리해서 전달을 해야 소통이 아닌가? 굳이 내가 이야기를 꺼내서 분위기 망칠 것도 없고, 그냥 이렇게 지나간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이번 여행으로 하여금 또 다시한번 난 혼자 떨어져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살아도 서울이 아닌곳에 살거나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혼자 사는 상상을 했다. 가족은 가끔 보면 좋고, 여행은 친구와 하거나 나 혼자 간다….
회사에서 한시간 단위로 오는 메세지에 신경 쓰이고 여행 일정은 당연히 나만 신경쓰고… 피곤하다. 런던 여행엔 내가 같이 가지 않기로 했던게 신의 한수였다는 생각이 든다는 사실 자체가 속상하다. 왜 가족들에게 나는 이런 감정이 드는가.

물론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아도 햇볕 만끽하며 좋은 것 보면 신이 난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엔 이직 생각, 짝꿍과 헤어질 생각,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생각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놓여있다.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는데 실상은 힘들어 죽겠다는 둘 어르고 달래서 끌고다니기. 저 날, Pret 카페에서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내가 갑자기 짝꿍과 헤어져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동생은 갑자기 휴대폰만 본다. 동생이 체득한 위기대처방법은 그런거다. 못본척 못들은척 하고 해맑게 다른 이야기하기. 엄마는 아쉬운 내색이 가득하다.
결국 나는 나의 고민을, 둘이 여행을 간 일주일 동안 해야한다. 나는 내가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서 뭐든 혼자 하는거라고 생각해왔는데, 한국에 있었어도 혼자 알아서 다 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뭐든 알아서 잘. 그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는걸 다시 깨닫게 되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