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주차 회고 |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시험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모의고사를 몇 번이나 풀어도 계속 반타작을 하는 탓에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하루는 5월로 시험을 미루는걸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죽이되든 밥이되든 해보자고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계속 오답노트를 정리하다가 어제는 “이제 좀 올랐겠지” 기대하며 5회차 모의고사를 풀었는데 웬걸 여전히 50퍼센트 대 정답율에 머무르는 내 점수에 기운이 쭉 빠져서, 필요한 것들이나 좀 사고 들어와야겠다 하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 맞으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x 까 그냥 하면 되지” 말이 마음 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불안해하는 내 자신에게 또 다른 내 자신이 하는 말이었다. 시험 2주 전에 모의고사 반타작인데 뭐… 어쩔텐가. 이미 칼은 뽑았고, 무라도 썰어야지.
큰 시험을 앞두고 마음에 부담이 많다 보니 수능시험을 앞둔 고3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그 때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열살도 더 어렸던 과거의 나는 이 긴장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부정적인 시나리오는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썼다보니 준비가 안된 내 스스로에게 특별히 기적이 찾아오길 바랐다. 뭐 당연히 기적 같은건 없었고, 오히려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언어 시험은 집중을 하나도 못해 역대 최악의 성적을 받았고, 수학은 안나오겠지 대충 넘긴 통계가 왕창 출제되어서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내 인생 망했다고 생각하고 대단히 좌절했는데 점심 도시락에 들어있던 아빠 손편지, 그리고 교실 밖 복도에서 손에 쪽지를 들고 달달 외우고 있던 학생들을 보면서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고, 엄청나게 몰입해서 쳤던 외국어 과목은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최고점을 받아 그걸로 대학에 갔다. 그래서 집중과 몰입이 얼마나 큰 포텐을 발휘할 수 있는지 잘 알고있다.
불안한 마음은 지금도 같다. 그렇지만 과거의 내가 그랬듯 기적을 바라지는 않으려고 한다. 대신 나의 최선을 다하고, 적어도 미련 없이 쉬는게 목표다. 합격 하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내가 합격할 깜냥이 됐을 때 합격하길 바란다. 그래야 공정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합격할 깜냥이 되는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사실 모의고사 점수는 이래도, 매일 새롭게 알게되는 것들이 재미있어서 그 자체로 즐거울 때도 있고, 특히 뭔가 잘못되었었던 내 머릿속 사고회로를 제대로 뜯어 고쳤을 때 희열이 크다. 반타작 점수에서 그나마 다행인건 윤리 과목의 점수가 유난히 낮다는 점이라, 윤리를 보강하면 점수를 크게 올릴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부로 내가 액세스 할 수 있는 윤리 문제는 죄다 풀고, 개념과 유형을 탄탄하게 잡아서 윤리 과목에서 고득점을 받아보려 노력 중이다.
.
.
.
요새 거의 매 끼니를 빵이나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있어서 내 몸에게 미안한 마음이 좀 들었었다. 마침 친구가 주말에 잠깐 만나자고 제안을 해와서 오늘은 친구와 만나서 포케를 먹었다. 영양소가 골고루 든 메뉴이니 포만감도 있고 맛있었다. 베를린에서 포케 집 여러 군데 가봤었는데 그 중에 제일 맛있었다. 점심 먹고는 근처 지나가다가 다음에 한번 가봐야지 생각했던 근처 카페에 갔는데, 들어가보니 집 근처에도 있는 프랜차이즈였다. 이름이 “커피 & 바” 여서 시끄럽고 정신없을 줄 알았는데 고급스럽고 차분한 인테리어여서 유레카를 외쳤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내가 ‘아’ 하면 ‘어’ 하고 티키타카가 되는 친구라 같이 시간을 보내면 편안하다. 시험 끝나면 헤드폰을 하나 장만하겠다, 한국엔 언제 가겠다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지금껏 모든 계획을 “시험 끝나면 할 것들”로 이야기 했다보니, 그 친구도 마치 자기 계획에 내 시험 끝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게 재미있으면서도 고마웠다. 그러다 명문대학을 나왔고 영어 원어민인 친구이기에, 내가 취약한 윤리 과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언을 구했는데, 원어민이어도 윤리 문제 쉽지 않다고 위로를 해주면서,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문제가 요구하는 사고 흐름에 끼워 맞춰보라고, 게임이라고 생각하라고 이야길 해준게 흥미로웠다. 문제가 요구하는 사고흐름에 끼워 맞추는 건 당연히 해야하는 거라고 생각 했는데, 게임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접근이라 신선했다. 매일 미친듯이 문제 풀고 채점하고 해설 보고 하는게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그렇게 친구와 3시간 정도를 보내고 도서관에 돌아오니 정말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요즘 시험기간인데 항상 가는 ‘늦게까지 여는’ 도서관은 매주 일요일 한정 해당 대학교 학생들만 출입하도록 제한하고 있어서, ‘집 근처’ 도서관으로 사람들이 몰린 것 같았다. 수많은 날들을 도서관 다니면서 이 도서관에 오늘 처럼 사람 많은 건 정말 처음봤다. 그래도 다행히 도서관 안 카페에 빈 테이블이 있길래 앉아서 공부하다가 카페가 5시 쯤 문을 닫길래 나와, 다시 빈자리에서 마저 공부하다가 도서관이 문을 닫는 6시에 밖으로 나왔다. 이 도서관은 정말 좋은데 특히 주말에 일찍 문을 닫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올해 들어서 운동은 주 2회 이상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잘 지키고 있는데 오늘 놀고 와서는 마음 급하다고 운동을 포기하는 건 미련한 행동인 것 같아서 곧장 운동을 갔다. 대신 요새 가던 헬스장의 천국의 계단 머신 타는 대신, 집 근처 헬스장으로 갔는데 (아쉽게도 여긴 천국의 계단 머신이 없다) 그래도 비슷한 강도로 짧고 굵게 유산소를 하고 싶어서 스테퍼 레벨을 최대로 높여서 20분간 탔더니만 허벅지가 아주 불타는 줄 알았다. 이어서 근력운동도 하니 7시도 안된 시간이었는데, 집에 가면 도저히 공부는 안할 것 같아서 9시까지 하는 근처 카페에 우선 갔다. 좋아하는 자리에서 그린티 라떼를 마시며 많은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집에 갈까 하다가.. 집에서 몇 시간을 또 허송세월 보내는건 절대 안된다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늘 낮에 갔던 “커피 & 바” 카페의 집 근처 지점에 갔는데, 12시까지 오픈인데다 아주 한적한 것이었다! 신나게 생강 레몬 티를 시켜서 자리에 앉아 문제 풀고 채점하고 해설 정리하고를 반복했다. 아이패드로 오답노트 정리를 하고 있어서 콘센트가 없는게 좀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배터리 절약 모드를 켜놓고 쓰니 3시간 정도는 거뜬했다.

그렇게 꾸역 꾸역 반복하다가 11시 반 카페를 나서서 집에 돌아와 씻고 마스크팩 붙여놓고 재즈 들으며 주간 회고를 쓰는데 참 뿌듯하다. 나를 위한 계획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도 하고, 나에게 필요한 모든게 제공된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도 든다. 도서관, 헬스장, 늦게까지 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나는 할 수 없었던 소비.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왠지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든다. 다음 주엔 학교에서 발표가 있어서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내일 회사에서 최대한 드래프트 짜고, 수요일까지 완성해서 제출 해버리는 게 목표다. 그러면 학교 일정으로 더이상 스트레스 안받아도 되고, 그 이후로 시험까지는 쭉 연차를 썼으니까 계속해서 문제 풀이 하고 내 노트 복습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시험이 다가오는게 겁나면서도… 그래도 나 이렇게 참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데, 모든게 끝났을 때 얼마나 후련하고 행복할까 기대도 된다. 더 행복할 수 있게 조금만 더 힘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