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5주차 회고 | 오랫동안 밀린 할일 하기
독일에 살면서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각종 서비스로의 빠른 접근성과 미용.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필요한 것들을 예약 해두고, 입국한 당일날부터 별러온 일들을 하나씩 해냈다. 밀린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니 속눈썹 펌, 눈썹 문신, 머리 정돈 등 한 일도, 그 만큼 쓴 돈도 참 많다.
4월에 온 것은 내가 2018년에 한국을 떠난 이후로 처음이라, 정말 오랜만에 벚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움직이는 내내 창밖에 벚꽃잎이 흩날리는데 꽃비가 내리는 것만 같아 기분까지 향기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안개 때문인지 유난히 밖이 뿌얘 기대했던 만큼 쨍쨍한 풍경은 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한국 느낌을 물씬 느껴서 좋았다.
특히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친구의 회사 근처로 갔다. 종로 쪽이고 특히 점심시간이라 직장인들이 붐볐다. 그들의 움직임, 눈빛, 대화를 관찰하는데 왠지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니 나의 반쪽 같은 친구가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친구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잔씩 사서 청계천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쉬운 대화를 뒤로하고 친구는 사무실로 돌아가고, 나는 근처 서점에 가서 집에 간직해두고 두고두고 읽고 싶은 한국어 책들과 그리웠던 일제 펜들, 작은 다이어리를 사서 카페에 가서 이것저것 끄적이기도 하고 단순한 행정처리를 했다. 동생이 아주 알짜배기 정보들을 알려준 덕분에, 나는 추가로 만원 정도만 내고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집으로 이동하면서는 또 아주 간만에 평일 오후 대중교통에서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는데, "아이들 영어 학원이 오후 3시 반에 있어" 라든지, "교회 앵커맨이 갑자기 그만뒀어" 하는 대화가 왜인지 달갑지는 않았다. 가방에서 헤드폰을 꺼내 평소에 듣던 노래를 재생하고 사람들로 꽉찬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도 편한듯 편하지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공간은 언제부터 나에게 은근히 불편한 곳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