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7주차 & 월간회고 [2023.04]
5월이 밝은지 3일차가 되고서야 적어보는 4월의 회고. 긴 겨울을 보낸 탓이라고 말하기에는 답답하고 황당한 사건의 연속이었던 기이한 한 달이었다. 계속해서 물 밑 발장구를 치기에는 동력을 잃어버린, 참 고되었던 한 달.
지금껏 회사를 다니면서 굳이 사람을 찾았던 적이 없는데, 최근들어 '힘들다'는 말을 잘 털어놓고 다닌다. 예전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얼 지향하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부터 무턱대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비자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상황이 너무 막막하다, 불합리한 상황을 계속 겪으니 무기력해진다, 등등...
연휴를 앞둔 지난 금요일, 하필 시내에 사는 바람에(!) 집 밖은 이미 오후부터 시끌시끌. 바, 레스토랑, 펍 곳곳에 길게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베를린 바이브 물씬 풍기는 옷차림으로 하하호호 신난 사람들. 이럴 때 내가 집에만 있는 건 뭔가 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누굴 만나서 맥주 한잔 하고싶은데 만날 사람도 없다는 걸 깨달은 그때, 외로움이란 감정을 직방으로 맞았다.
그래도 몇번 사석에서 만났던 동료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흔쾌히 만나자고 했다. 왠지 연애전선이 흐르는 것 같아 끼면 안될 것 같은 자리는 대충 처치하고, 옛 동료 한명과 만나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난 그녀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듣곤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던 모습이 왜 이렇게 힘이 되던지. 나여서 힘든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합리적이고 괴로운 상황이라는 걸 알려주었달까, 그러니까 내가 지금 힘든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안심을 시켜주었달까. 그렇게 내 앞에 있는 것으로 힘이 되어주었다.
한창 일하던 어제 오후, 갑자기 연락을 해선 보고싶은 영화가 있다며 이번 주말에 만나자는 제안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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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퇴근 후 날이 좋아 괜히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음료수를 잔뜩 살 생각이라 카트가 필요했는데 동전이 없는 것... 지갑을 탈탈 털어보아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 이내 포기하고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고구마를 고르다 말고 나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기다려봐' 하곤 카트에 넣어 쓸 수 있는 코인을 가져다 주셨다. (감동)
계산할 때 내 앞에 계시길래 후다닥 정리하고 코인을 돌려드렸는데, 그 친절이 어찌나 고맙던지.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내 독일어 실력이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아직도 그 분 얼굴이 눈에 아른거릴 지경.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적이 없는데, 그저 그 속의 내가 힘 빼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 곁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음을 문득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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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참 좋다. 아이스 음료를 마시고 싶어서 얼음틀에 물이 꽁꽁 얼기만을 기다렸다가, 아이스 라떼를 만들었다. 왠지 기분이 좋다. 햇살이 좋아서?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아서?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져서?
어쨌든 이렇게 무던히 또 하나의 감정 풍파를 지나는 걸까.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 속에서 잠시 길을 잃었지만 이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