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0주차 회고 | 여름 안녕
이번 주 내내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날이 제법 쌀쌀하다. 한국은 장마가 끝나고 한참 무더위라는데, 더워도 추워도 늘 햇빛이 쨍한 그 파란 하늘, 이제 점점 더 그리워질 일만 남았다. 왜냐하면 여기는 이미 여름이 끝난 것 같기 때문에... 출근길 옷을 고를 때에도 니트 가디건은 필수. 사실 요즘은 뭘 입을까 고민할 기력도 없어서 회사에서 제작한 집업을 주로 입는다. 지난 주 어떤 날은 퇴근하는데 어떤 분께서 '아니 젊은 사람이 그런 옷 입고다녀' 라고 하시기에 '그럼요, 학원에 우리 회사 홍보해야죠' 하는 답변으로 무마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나의 에너지가 다른 곳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인건지. 이 회사에 처음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항상 블라우스, 치마에 가끔 힐도 신고 다녔었는데.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제 내겐 모두가 익숙하고, 사람들도 나의 역할을 알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서는 감사한 마음이 들고, 오랜 기간을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감사한 마음이라는 단어를 타이핑 하면서 잠시 생각해봤는데. 어쨌든 반쯤은 한국 버블에 속해있으니 독일어를 못해서, 아니면 동양인이라서 받을 수도 있었고 안 받았을 수도 있는 부당한 대우를 면했다는 점에도 사실 감사한다. 반대 급부로, 한국 버블에 속해있으니 힘들었던 점도 당연히 엄청나게 많았지만. 어쨌든 내가 독일에 정착해서,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준 회사니까 무엇보다도 그 점에 가장 감사한다. 어제 유튜브 남궁민 배우 출연 영상을 봤는데, 거기서 그 배우가 그런 말을 했었다. '말도 안되는 대우에 구박 받으면서도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벅차서.'
진심으로 사랑해야겠다. 나의 일도, 공부도, 삶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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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엔 원래 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할 일도 많고 몸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으로 취소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 때 커피라도 마시러 오라는 그녀의 은근한 압박에, 회오리 비바람이 부는 엉망진창 날씨를 뚫고 글루텐 프리 케이크 세 조각과 여러 간식거리, 꽃을 사서 다녀왔다.
막상 가보니 옷장 정리하고 더이상 안 입는 옷들을 나 준다고 잔뜩 챙겨둔 그녀. 솔직히 내 취향의 옷은 아니었어서 거절하고 싶었지만... 내가 회사에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니 그런건가, 싶어서 고맙다고 다 받아왔다 😂
아무 시험도 아니고 변호사 시험 준비 중인데 어떻게 저렇게 여유가 넘치나 싶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그녀. 독일어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고, 폴란드 변호사 시험을 이미 합격한 상태인데 독일 변호사 시험을 치르는 것이니 크게 부담이 없는 걸까. 나는 당장 초중급 독일어 시험 보는 것에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게 일과인데... 강박에서 조금 더 해방되어서 마음만은 편안하게 집중하도록 노력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책, 예술, 외국어, 요가에 꼭 시간을 내어 그것을 즐기는 점을 본받아야겠다.
사실 애초에 '미안한데 나 17시에 미용실 예약을 잡아놔서 이만 가봐야겠다' 말하고 일찌감치 자리를 뜰 생각으로... 아침에 눈 뜨자마자 미용실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당일 예약은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토요일엔 대부분의 미용실이 일을 안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예약 없이 방문 가능한 미용실을 또 폭풍 검색해서 한 곳을 찾았고, 퀄리티는 별 기대 안하니 그 곳에서 아무 디자인 없이 그냥 길이만 뚝, 자를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 미용실로 가는 길에 독일어 단어집을 좀 보다가 그만 잠이 들어서 지하철 정류장을 여러개 지나치는 바람에 나는 (내 마음속으로)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참 뒤에야 도착했고, 여성 헤어 커트를 담당하는 디자이너는 18시면 퇴근한다고 해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실 이번주는 회사 - 학원 - 집의 반복이었다. 무탈하게 한 주를 보냈음에도 감사한다.
이번달 한달 동안 독일어 공부를 하면서, 사실 후반부 쯤엔 독일어 시험에 대한 자신이 너무 없어서 9월에 예정되어 있던 시험에 추가 금액을 내고 10월 초로 한달 연기했다. 그런데 또 계속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이대로 쭉 하다보면 할만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내가 한달동안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겠지.
7월은 정말 독일어로 꽉 채운 한달이었다. 앞으로의 8월, 9월도 스트레스 없이 일하고 공부에 전념하는 일상이기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를 나 스스로에게 바라며. 7월, 그리고 2023년의 여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