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6주차 회고 | 너무 할 일이 많아 압도되었을 때
개강 한달 반, 공부해야 할 슬라이드는 과목 당 2,000장이 넘는 것 같다. 한장 한장 그냥 넘길 건 별로 없는데, 이러다 과락하면 어떡하지 두려운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낸 것 같다. 요즘 해는 더 짧아지고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서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가기도 힘이 든다 - 드디어, 겨울의 시작이다.
학교에서 내가 월-목 일정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걸 문제제기하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회사 때문이라고 설명하자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답변해왔다. 변명이라는 단어에 분노한 나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고, 말로 대화하자며 줌 링크를 보내왔다. 그리고 대화를 하니 서로의 입장이 이해가 됐고, 결과적으로 나의 입장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 학교: 원칙상 (역시), 베를린 시에 제출하기로 과목 및 세션 별 학생들이 투입해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다. 학교 프로그램 자체가 풀타임으로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너는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고있으니 이 시간을 물리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상황인지 의구심이 든다.
-나:
1) 물리적으로 시간 부족한건 맞는데 없는 건 아니다. 월-목은 회사 때문에 못간다. 그런데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 일요일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해서 학교 수업 소화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2)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오는 시너지도 분명히 있다. 실무에서 놓쳤던 부분을 학교에서 채우는 경우도 많고, 학교에서 모르는걸 회사에서 담당자에게 바로 물어볼 수도 있다.
3) 몇개월/몇년만 더 일하면 영주권 받을 수 있다. 학교에 있는 동안 학생들은 졸업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겠지만 당신들은 알지 않나, 비자 스폰과 취직에 대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 나는 졸업하고 그 장애물을 제거한 상태에서 직업적 기회를 탐색하고 싶다.
4) 나는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가 아니기 때문에 테크 부분 시험에 염려가 많이 된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재시험을 4월에 볼 수 있고, 2월은 수업이 없지 않나. 그래서 나의 차선책은 2월에 수업이 없는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4월에 재시험을 보는거다. 이정도면 통과할 수 있다고 본다.
5) 정신적으로도 회사에 지쳐있던 나에게 학교 생활은 큰 환기가 된다. 금, 토 학교가려고 월-목을 기다리며 일한다.
6) 이 서류 보니 과락한 학생들 숫자가 당신들 퍼포먼스에도 영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나는 그 숫자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나를 걱정해 주는건 감사한데,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열심히 하고있고 비로소 당신들 상황도 이해를 했으니 행운을 빌어달라.
결론적으로 정해진 학교 세션에 참석하지 않는 리스크는 전적으로 내가 부담하는 것이지 학교에서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졸업 후면 받을 수 있는 영주권은 내가 놓칠 수 있는 기회비용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나의 개인시간, 휴식시간, 노는시간을 포기하고 일과 공부에 매진하기로 선택한 것이니 응원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말하는데 더이상 할 말도 없었겠지. 좋은 전략인 것 같다고 격려를 받고 미팅을 마무리 했다.
(1년에 5일 씩 주어지는 교육휴가, 그리고 내 개인 휴가를 사용해서 웬만하면 중요한 코스는 참석하는게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그렇게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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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수요일엔, 그간 스터디를 같이했던 팀원과 오랜만에 만나서 밥을 먹었다. 의대 시절을 거쳐 의사로 살고계신 분이니 나의 이런 상황을 설명했을 때 얼굴 볼겸 밥만 먹고 후다닥 집에 가자고 제안했고, 진짜 밥만 먹고 후다닥 집에 왔다. :) 이해해주셔서 넘 감사했다.
세상 힙한 식당이었는데 결국 먹은건 샌드위치지만 (?). 밥 먹으며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다가, 결국 인간은 안정적인 관계 속에 있어야 행복한 것이구나 하는걸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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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이 너무 많아 압도되었을 때, 할일을 좀 줄이고 내가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체크리스트를 짠 다음, 하나하나 지워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내 시간을 쓰면 된다! 오늘도 마음은 여전히 두렵지만 하나하나씩 해결해보아야지. 잘하고 있다.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