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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화나면 하던 말. "커서 너랑 똑닮은 애 키워봐야 알지."
스무살이 될 때까진 그렇게 속썩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뭐 때문에 다투고 그런 말을 들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안난다. 하여튼 이번 주는 나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 내가 나에게 좋아하는 걸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 보냈다. 글쎄 내가 뭘 좋아하더라. 누구한테 보여주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했던 일들이 뭐가 있었더라 생각해보는 데에도 시간이 깨나 걸려서 흠칫 놀랐다. 난 내가 좋아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건지, 아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반응을 보게돼서 좋아진건지도 헷갈렸다. 후자였던 거라면 좋아하는 줄 알았던 일도 인스타그램에 안올리면 안좋아질까 싶어 이번엔 주말에 한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안올려보기로 했다.
어쨌든 아무렴 내가 키우는 아이가 먹고 싶었던 것 먹고, 사고 싶었던 것 사고, 하고 싶었던 것 하길 바라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해봤다. 결론은, 무척 자유롭다고 느껴졌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하고싶었던 걸 마음대로 하는 일이야말로 어른의 특권일 것이다. 더 대단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거나 그러면 안될 것 같아 고민하는 것 또한 어른의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나는 은근한 우울감에 잠식되어 애써 무언가를 해보는 일이 사치라고 느꼈던 것 같다. 드디어 마음을 먹었는데도 오전 내내 가족들과 영상통화 하며 강아지들 재롱 실컷 구경하다가 애써 집 밖을 나선 일요일. 그제서야 햇빛을 맞고 바람을 쐬고 바깥 공기를 느끼는 일이 얼마나 자유로운 일인지를 아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집 앞에 베이글을 파는 힙한 카페가 생겼다. 원래 친구와 토요일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집 앞으로 불러내긴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인터넷으로 찾아낸 다른 동네 베이글 집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 유튜버가 Everything but bagel이라는 시즈닝을 엄청 좋아하길래 항상 궁금했었는데 독일에선 판매하지 않아서 먹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 베이글 종류에 Everything bagel 이 있길래 빵을 바꾸어 주문해본 연어 베이글. 시켜보니 말 그대로 모든 토핑이 다 올라간 베이글이었는데 이걸 먹으니 그 시즈닝이 대충 상상이 갔다. 참깨, 검은깨, Poppy seed, 소금 알갱이, 견과류 같은 토핑이 다 섞인 게 아닐까..
생각보다 베이글은 별로였지만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이 좋았다. 예쁜 강가를 따라 산책하며 간만에 햇살을 만끽하고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냈던 시간. 늘 하는 회사 욕이나 누가 어쨌니 저쨌니 하는 불쾌함 덩어리가 아니라, 그간 무얼 읽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누니 즐거웠다.
영화 미나리는 미국 감독, 미국 작가, 미국 배급사를 통해 만들어진 미국 영화인데 왜 오스카 상에서 외국 작품상을 수상했을까에 대한 발표 자료를 만드는 중이라는 친구. 그제서야 오스카상 수상을 거절하는 배우들이 종종 있는거구나 이해가 가면서 나도 생각해보게 됐다.
언어별로 기대하는 이미지, 혹은 이미지 별로 기대하는 언어가 있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백인 나라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 프레임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여전히 나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주변과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개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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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큰 길을 따라 쭉 내려오는데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길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 날 라이프치히와 프랑크푸르트 축구 경기가 있었던 것. 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유니폼 맞춰 입고 맥주 마시면서 경기 보고싶다고만 생각했는데, 친구가 나즈막히 말했다. "와 근데 어쩜 이렇게 백인 남자밖에 없지."
그제서야 둘러보니 정말로 이상하리만큼 금발머리 백인 남자들 뿐인 주변 풍경. "헐 나 진짜 외국 온 것 같아." 농담을 이어갔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말 자체가 나를 완전한 외국인으로 여기는 전제를 담고 있다. 지금의 나야, 독일어를 못하고 회사에서도 영어로만 소통을 하니 내가 이 땅에서 외국인 그 자체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독일어를 유창하게 잘하고 독일인들 사이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에게는 조금 다른 뉘앙스로 느껴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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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내가 베이글 베이글 타령을 하니 동생이 최근에 먹었다며 먹물 베이글 사진을 보내왔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간 베이글 집에선 까만색 poppy seed 베이글을 주문했다 (이틀 연속으로 베이글). 맛은 별로였는데 자리에 앉아 한 입 먹었을 때 그 순간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그리고 주말 오후 햇살 아래에서 나눈 우리의 대화가 참 좋았다.
이런 순간이면,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편안한 차림으로 만나서 책 읽고, 도란도란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보냈던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우린 그 때도 참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나서 돌이켜 본 우리는 더 예쁘다. 시나몬 파우더가 잔뜩 올라간 허니진저라떼를 마주 앉아 마시던 2018년의 우리들.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건강한 도전을 이어가는 친구가 자랑스럽다. 어디에서 무얼하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나의 진심에도 변한 건 없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떨어져있어도 변치 않는 마음을 나누어 주어 고맙다.
친구에겐 나눈 이야기지만... 금요일 저녁 옛 동료와 시간을 보내며 느낀 점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평생의 동반자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이며,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그렇지 않았을 때 혼자서 감당해야할 외로움이란 얼마나 큰 무게인지.
자세한 이야기는 적지 않겠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히 지키는 것. 가치관이 맞지 않았을 때 상대를 놓아주는 것. 이 모든 것이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용기라는 사실을 그의 눈을 보며 절절하게 느꼈다.
나의 선택과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는 그에게 고맙고 또 미안했다. 부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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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친구가 곧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어렸을 때 부터 친했던 이미 기혼인 친구는 어제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선, 둘째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초여름 요즘 주말엔 유난히 결혼식 영상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자주 올라온다. 이렇게 하나둘씩 친구들은 가정을 꾸려간다.
나는 사회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니 그렇지만도 않다. 20대 초중반엔 학교 생활 열심히 하면서 나의 길을 설계하느라 아둥바둥, 20대 중후반엔 경력 n년을 채우고싶어서 아둥바둥하느라 결혼과 정착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못들어본 것 같은데 20대 후반, 30대를 앞두니 온통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 뿐인것만 같다. 이 모든게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 한국 땅을 떠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특별히 결혼과 육아는 보편적인 '전통적' 가치라서 그것을 공유하는 많은 나라에 비슷한 관념이 존재하더랬다. 즉 그걸 따르거나, 어쩌다보니 따랐거나, 따르지 않거나, 아님 반발하는 그룹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니 이건 내가 한국인이라서 풀어야 하는 답답한 숙제가 아니라, 태어났으면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인생의 과제 같은 것이다. 삶을 좀 더 잘 살아내려면 내 안에 있는 해답을 꺼내야 하겠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과제를 영원히 미룰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정답이란 건 없겠지만 어떻게든 현명한 답을 내놓고 싶은 마음에 어딘가 마음이 묵직하다. 이렇게 나랑 잘 놀아주다보면 어느날 확신에 찬 답을 내놓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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