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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9주차 회고 | 비상계엄과 관계

일상/회고

by 띠용- 2024. 12. 1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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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한국의 비상 계엄 뉴스로 모두가 정신 없이 일상을 보낸 한 주였을 것이다. 독일은 오후 시간대 였기에 그 날도 어김없이 일을 하는 중에, 갑자기 한국 직원들끼리 가짜뉴스 아니냐, 말이되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이냐고 여쭸더니 대뜸 „한국에 계엄령 내렸대 지금“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다급히 뉴스를 찾아보니 그 말이 진짜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대략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파악을 하고, 카카오톡을 켜서 연락을 주고 받는 상태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황급히 메세지를 남겼다. 대체 어떻게 된거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을 할 수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벙쪄있는 가족들로부터 오는 답이라곤 계속 헬기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었기에...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본가 동네가 국회와 가깝다는 사실은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켰고, 그제서야 연락을 안한지 한참이나 된 오랜 동네 친구가 떠올라 그 친구에게도 메세지를 남겼다.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어서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건지만 모니터링 하느라 손을 덜덜 떨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전국 변호사협회에서 불법적인 행위라고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고, 여러 속보들이 쏟아진 후 3시간이 채 안되어 계엄령은 해제되었다. 이후에 밝혀진 바로는, 명령이 하달되는 여러가지 루트 중간 중간에 위법하다고 판단해 상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고 덕분에 계엄은 „적극적으로“ 실행되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대목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마침 지난달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아주 세세하게 다룬 소설이다 보니 계엄 상황이라는 그 환경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그 배경 안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 그리고 유족들은 어떤 감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는데 덤덤하게 상황을 설명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쏟을 정도로 가슴이 아렸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라니...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소설같은 상황을, 광장에 열린 집회를 통제하는 군부의 모습을 계속해서 상상하게 됐다. 또 2년 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그 시작은 계엄령과 같았으니.. 이후에 국경이 통제되고, 주변 국가들은 일종의 방어체제를 발동시키고, 러시아 내부에선 징집령이 떨어지는 상황을 직접 목도했어야 했으니 이러다가 정말 그들처럼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국내에서 내전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별의 별 상상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아서 하늘에 감사하지만 아직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남아있으니 하루하루 뉴스를 체크하며 아무 극적인 뉴스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

 

바로 당일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동료들은 몇 없었고, 그 다음날 부터 대체 한국에 뭐가 어떻게 된거냐고 묻는 동료들이 생겨났다. 그 질문에 답을 해야하는 한국 사람들은 그냥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짓이라고 답할 뿐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한국 뿐만이 아니라 일본도, 독일도, 프랑스도, 미국도, 필리핀도, 지금 세계 곳곳에 이상한 정치 상황이 일어나고 있지 않냐며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결국 경제가 전부일까?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대부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까? 그렇다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주창한다는 국수주의는 정당한가?

 

그래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해주었다.

 

경제가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있는 절대적인 답은 아니지만, 많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해결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먹고 사는 것"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출발하며, 안정된 삶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논의의 기초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모든 문제를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의 정치 상황에서 국수주의가 부각되는 이유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 글로벌화로 인한 사회적 불안, 정체성의 위기 등이 국수주의적 정책과 담론을 강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국수주의는 표면적으로는 "국민 우선"내세우지만, 이념이 실행되는 방식은 다양하고 때로는 배타적이거나 편협하게 변질되기도 합니다.

국수주의가 내국민의 "먹고 사는 것"초점을 맞추는 것은 맞지만, 접근이 진정으로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지, 아니면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만 혜택을 주는지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또한, 국수주의적 정책이 타국과의 갈등이나 협력의 기회를 차단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자국민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됩니다.

결론적으로, 경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는 경제적 관점뿐 아니라 윤리적, 문화적, 환경적 접근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런 와중에 난 결국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던 남자와 끝을 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전화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나를 보러 베를린에 자주 올 때마다 그를 향한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면서 스스로 계속해서 의문을 키워왔었다. 지난 한두달 정도를 관계와 연애 감정에 대해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냈건만... 조건만 따지면 결혼 해야할 것 같은 남자이지만 그를 향한 애착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게 너무나 이상했다. 그를 좋아하고 싶었고, 그가 어떻게든 ‘내가 그를 좋아하도록’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외모를 꾸며볼까 미용실도 데려가고, 향수 시향도 해보았지만 별 도움이 안되었다.

그러던 일요일 아침.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스쿼시를 치기로 해서 다녀온 후, 집에 가는 길에 친한 한 명의 친구와 그녀의 연애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옛 짝꿍을 떠올리고 펑펑 눈물을 쏟아버렸다. 그리곤 진정한 후 이 남자와 점심을 함께 하며 내가 눈물을 쏟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나의 감정에 대해 일절 묻지 않았다. 스쿼시가 어땠는지, 어떻게 운동했는지, 앞으로도 계속 할건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 때 결심했다. 나의 희노애락을 공감할 수 없는 사람과는 미래를 그릴 수 없겠다.

그는 무색 무취의 인간이었다. 어떠한 취향도, 선호도 없이, 그저 내가 좋다면 무조건 좋은 사람. 어떤 상황과 그 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설명해주면 그 모든게 정당하다고 거들어줄 뿐,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뭐든 “딱히 상관 없어”하는 사람이었기에, 주변에서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때 나는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다, 어디에 살고 있다 같은 사실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순수하고, 악의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흰 도화지 같은 그 남자에게 내가 가르쳐줄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감당하기 조금 벅찬 생활 습관도 그 역할이 아주 컸다 – 남의 집 귀한 아들에게 잔소리 하고싶지 않다고 했더니 내가 실망해버렸던 포인트가 뭐였는지 알려줄 수 있냐고 묻기에, 구차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그건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나는 옛 짝꿍에게서 마음이 아직 머물러 있는지 모른다고, 그가 바라는 만큼 나는 그를 애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사람은 그래도 반년 쯤은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어 이제는 결론을 지어도 될 것 같다고. 시간이 지나면 그의 마음은 커지겠지만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란걸 깨달았다고, 그러니 여기서 이만 멈추자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리를 정리하고, 그를 눈 앞에서 떠나보냈다. 몇 시간 쯤 뒤 너무하다고 메세지를 보내오더니, 통화좀 하자는 메세지도 보내오더니, 사라졌다.

 

좋은 경험이었다. 마음이 무너졌을 그에게 너무나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관계에서 무엇을 찾고 있고, 나의 가치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옛 짝꿍이 그토록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나의 말에 엄마가 한 말이 있었다. “그 사람이 못가졌던 거 가진 사람 말고, 그 사람 처럼 좋은 인품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지”.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리고 인생에서의 가치관이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겠다. 이것 또한... 경험을 통해 얻는 교훈이겠지. 경험해야만 모든 걸 알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경험했기에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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