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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4주차 회고 | 어린시절의 나에게

일상/회고

by 띠용- 2025. 4. 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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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사실 지난주 주말에 기한보다 하루 일찍 제출을 해버렸으니, 이번 주는 내게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진정한 자유 주간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한국행 표를 살 때 첫번째 자유 주간에는 베를린에서 친구들과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4월 7일 월요일 아침 표로 끊어놓았던 터라 지난 주말엔 계획대로 나름 많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거의 지난 2년 가까이의 시간 동안, 학교 공부한다고 회사 일에는 최대한 선을 긋고자 노력해왔기에 이제야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내가 놓친 것들이 많았다. 일주일 시간이 난 김에 이번엔 나의 업무를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고, 휴가 가기전에 급한 업무들도 미리 끝내놓을 수 있어서 결론적으로는 잘 짠 일정이었는데 휴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 느리게 느껴지긴 했다.

휴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그 한 주를 시작할 때 내가 눈을 번쩍 뜰 수 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CFA 결과 발표 일정이었다. 4월 3일 목요일에 발표가 난다고 공지를 받았었기 때문에 이 날이면 드디어 내 이력서를 수정할 수 있겠다고 신이 나서 월, 화, 수요일을 보냈고, 당일인 목요일은 결과 발표가 있을 시간까지 종일 두근두근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 내가 본 시험 차수부터 최초로 수험생의 결과 점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한 문제 차이로 시험에 불합격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한테 말은 못했지만 생각보다 쉽다고 느꼈고 그래서 자신있게 고득점으로 합격했겠거니 생각했는데… 모의고사 시험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아주 아깝게 떨어지고 말았다. 아예 말도 안되는 낮은 점수를 받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포기했을텐데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고 보여주니 포기하기도 아까웠다. 실망감을 다스리려 챗지피티와 긴 상담도 하고, 내가 이야기 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됐다고 상황을 설명하니, 어떤 친구들은 아까우니 다시 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한 친구는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서 이미 시니어 포지션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 정도의 비용과 에너지를 써야한다면 명문 대학의 관련 온라인 강좌 수료증을 취득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맏는 말이다. 재시험은 8월이나 되어야 볼 수 있고 그 재시험에 대한 등록은 5월 6일까지 마쳐야 하는데 아직 나 스스로 결정은 못했지만 아직까지는 재시험을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워서도 아니고, 이 시험이 나에게 줄 상당한 베네핏에 대한 대단한 확신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이다. 사실 시험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 만으로 나는 재무분석에 대한 이해도를 아주 크게 향상시킬 수 있기도 했고, 회사는 이 사실을 통해 내가 투자 쪽으로 커리어 전환을 하는 데에 진심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투자금융실의 주니어 포지션으로 팀 변경을 제안해주었으니 이 시험 결과로 인해 아무것도 얻은게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치만 지금까지 내가 떵떵거리고 말했던 많은 계획들이 취소되거나 실패로 돌아갔다보니 이제는 팀 옮기는게 확정인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더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의심하게 된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어떻게 지냈냐 물으면 이 여러가지 힘빠지는 것들을 이야기 하면서 “그래도 팀을 옮기니까 괜찮아”라고 말하곤 했는데 진짜 팀을 옮기긴 하는걸까? 당최 모르겠다. 그리고 팀을 옮기면 그 팀의 상사인 전무님은 나를 제대로 굽고 삶고 튀기고 탈탈 털어 이용하려고 대단히 벼르고 계시던데 그렇게 개고생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대체 무얼 위해서? 그리고 난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이게 맞는건지?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느낀거지만 내가 그토록 실망감과 좌절을 느꼈던 이유는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된 시험을 끝내고 논문을 제출해서 이것들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연봉을 인상하고, 팀을 옮기고, 성공적으로 이직을 하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도 성공적으로 각자가 원하는 포지션에 랜딩을 할 줄 알았다. 막상 이렇게 써놓고 보니 터무니 없지만 철저히 믿었다. 그것이 나의 헤르미온느 추진력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근거 없는 믿음을 키워나갔고 그것은 곧 확신이 되었었다. 지금 힘들지만 버티면 이런 저런 보상이 바로 따를 것이다. 그러니까 하면 된다고.

그 모든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여러가지 감정을 마주해야 했지만.

이제는 한숨 한번 크게 쉬고 생각한다.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회사가 금요일 일 안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학교 캠퍼스 안에서는 회사에서 느끼는 긴장과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웠고, 새로운 인사이트와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환경이 벅차게 행복했다. 내가 모르는 이공계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둥바둥 애쓰거나 또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는 힘들지만 즐거웠다. 없는 체력을 짜내기 위해서 비싼 영양제를 챙겨먹고, 늦은 밤엔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 공부하기 싫을 땐 카페에 가서 여러잔의 커피와 디저트를 시켜서 공부하는 건 사실 내가 고등학교 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그동안 애써 삼켜온 실망감과 약간의 무기력함을 너머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나름대로 어렸을 때 내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스스로에게 해준 것이다. 유학에 가고 싶었고 외국어를 마음껏 공부하고 싶었기에 외국에서 취업을 했고,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갔다. 해주는 주체와 하는 주체가 모두 내 자신이니 결코 평탄한 일과는 아니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성숙해지는 경험을 했다. 결과를 뒤엎을 수도 없는 노릇에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또다시 정신승리하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꾸역꾸역 생존 전략을 짜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 속 돌덩이 같은 것이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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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월요일 오전 11시 20분 베를린에서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두시간 전엔 공항에 도착하려면 8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하니 7시에 일어나야겠다 계획을 했다. 오히려 새벽 4시에 또 눈이 떠져서 뒤척이다가 계획한 대로 준비하고 집안 정리도 좀 해두고 8시가 좀 넘은 시간, 탑승권을 한번 열어봤다.

“보딩 10시 50분”

아차. 갑자기 손이 벌벌 떨리면서 이러다간 무조건 비행기를 놓친다 싶었다. 이번 여행에는 짐을 부쳐야하는데 그제서야 출발해서 공항에 도착하면 짐을 부칠 수 있는 최소 한시간 전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급히 우버 앱을 깔아서 택시를 부르고, 부들부들 떨면서 차량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실 모든게 계획대로 였고 내가 갑자기 지난 실수들을 회상하면서 패닉된 것이었다. 택시를 기다리다가 깨달았다. 결국 7만원 넘는 돈을 쓰고 편하게 공항에 도착한 나는 너무 일찍 도착했다고 짐을 부칠 수가 없어서 벤치에 앉아서 회고를 쓰고있다. 내가 너무 바보같고 웃기다. 물론 “문제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길에서 내내 불안했을 바에야 몸이라도 편하게 택시타고 왔으니 최악은 아니지만 사리분별 없이 행동이 앞섰던 내 모습에 어이가 없다.

그런데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혼자 가만히 있을 때도 왜 이렇게 한국 가는게 실감이 안나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가 했는데, 나의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얻었을지언정 어렸을 때 내가 원했던 것들을 어른이 된 내가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그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냥 앞으로도 어린 나든, 어른인 나든 잘 보살펴주면서 사는게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이렇게 정신승리 성공.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했기에 내 학교 친구들도 이맘 때 쯤이면 링크드인에 취업 소식을 마구 올려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단 한명 뿐이었다. 지금 정말 취업시장이 어마어마하게 나쁘구나 생각하고 나도 이러다 이직을 못하면 어떡하지 불안했는데, 어제 친구와 브런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이미 취업을 했는데 아직 업무 시작을 안해서 링크드인에 못 올리고 있거나, 굵직한 기업에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게 힘이 되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고, 보이지 않을 뿐 각자 애쓰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보았다. 푹 가라앉은 것만 같은 나도 계속해서 물장구를 치면 언젠가는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8월 재시험 결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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