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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을 돌아보며

일상/회고

by 띠용- 2025. 3. 28.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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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기대했거나 기대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와르르 거절을 받고는 우울한 마음으로 겨우겨우 하루씩 살아가던 어느 날. 회사에 새로 입사한 친구가 점심을 함께 먹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와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그 친구가 그 때 갓 졸업한 MBA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회사 바로 근처에 위치한 캠퍼스에서 베를린 공대의 '에너지 특수' 프로그램이었다. MBA도 가고싶고, 일도 그만 둘 생각은 딱히 없었던 터라 일과 공부가 결합된 것 같은 모양새의 프로그램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당시의 나는 무리해서라도 영미권 MBA에 가고 싶어서 일단 시험 점수부터 준비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역시나 꾸역꾸역 시험을 볼 계획이었는데, 시험 당일, 인터넷 속도가 기준을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험 자격이 박탈되었고 그 길로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였다. 안되는 독일어로 꾸역꾸역 요청한 인터넷 수리 서비스 기사님은 신발도 신지 않고 쿵쾅쿵쾅 집으로 들어와 삿대질을 하고, 집 앞에 밀가루 테러를 당하고, 현관문 앞에 쓰러진 사람을 보며 죽은 사람인줄 알고 손을 벌벌 떨고... 세상이 나를 "억지로 까는" 시기 그 자체였다.

 

자리로 돌아와 검색해보니 마침 그 해 가을학기의 신청 기간이었다. 주말이 되어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열고 몇시간 동안 뚱땅뚱땅 신청 서류를 적고, 대학원 생각이 있었으니 다른 서류들은 모두 이미 구비가 된 상태였어서 별 기대없이 입학 지원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그 이메일을 받고도 사실 고민이 많았다. '이거 정말 의미있는 투자가 맞나?' '더 좋은 기회가 있는데 적당히 타협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하게 된건, 여기서 더 늦으면 용기를 내기 어려워질 거라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어려워질 것을 알기에 더 늦기 전에 20대의 마지막에 공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입학은 10월인데 학기가 시작되고 나면 여유시간이 극도로 적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체류 기간이 충분해지는 시점에 독일어 자격증을 갖추고 있어 바로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독일어 학원에도 등록했다. 6시 반부터 3시간동안 진행되는 intensive 코스에 등록해서 독일어 공부에 매진하며 7,8,9월을 매달리고 결국 3개월 만에 B1 자격증도 땄다.

 

그 때도 회사에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까. 나는 어떤 선택지를 취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많았다. 학비를 내달라고 할까, 퇴사할까, 주 30시간 정도로 일하는 시간을 줄일까... 다행히도 MBA에서 내가 선택한 Energy Management 프로그램만 매주 금요일, 토요일에 8시간 짜리 연강이 있어서 금요일만 일을 하지 않으면 공부와 병행이 가능한 옵션이었다. 여러가지 고민을 하다 주 40시간을 그대로 유지하되 매주 금요일은 출근하지 않도록 배려해달라고 요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승인을 받았다. Work councils의 반대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결국 지원을 받게 해주신 팀장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미친듯이 질주가 이어졌다. 처음 공부한 과목이 Technology 였는데, 나는 익숙하지도 않은 물리, 화학, 생물 기초지식이 베이스로 깔려있어서 수업 중에 학생들이 하는 질문 자체도 이해가 안되었다. 그래서 퇴근도 20시에 하고선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인강도 듣고, 자료들을 뒤져보고, 수능 문제도 풀면서 이해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왕이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었지만 이공계 전공생들과의 그 갭을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일부 친구들이 작년도 기출 문제를 구해다가 나에게 공유해주었고 나는 그 문제에 해설을 찾아 달달 외웠다. 그리고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다.

 

다음으로 이어진 과목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즈니스, 경제, 투자 과목들은 이해는 수월했지만, 오히려 '당연히 잘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다.

 

2024년 여름방학. 10월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학기는 교양 수업들 뿐이고, 지금까지 투입한 만큼의 노력이 결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 더 알차게 나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아니면 일에 더이상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아서, 또 할일을 만들었다. 8월 1일, 2월 시험 응시에 필요한 모든것을 준비하고 인강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2025년 2월 14일 시험 날이 될때까지도 기억이 없다. 강의를 한참 듣고 나선 교재를 정독하고, 요약하고, 문제풀고, 암기하고의 반복이었다.

 

2024년 상반기는 학사 일정이 한참 진행 중이던 시기였고, 하반기는 CFA 공부하는데에 전력을 다했다. 그래서 사실은 '어서 빨리 2024년이 내 인생에서 삭제되기만'을 바랐고 12월 31일 모든 게 끝났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그 바람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종종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공부한 것 외에 사실 2024년에 대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일에서 바운더리를 만드려고 무던히도 애쓴 덕에 사람들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덜 묻기는 했지만 나도 그만큼 일에 애정이 식었고, 일에 있어서는 더더욱 2024년도에 무얼 했는지 회상하려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말로 내 인생에서 그 해가 사라진 것이다.

 

CFA 시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족들과 통화를 하며 참 행복했다. 지하철과 트램 밖 낯선 풍경도 마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설렘을 주었다. 운동을 하고, 이제 3월 말에 논문만 쓰면 된다고 기뻐하면서 벼르던 헤드폰도 하나 장만했다.

 

그렇게 3월 말이 되었다. 이제 며칠 뒤면 정말 모든 게 끝이 난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시간이 비로소 끝이 난다. 그런데 내 마음은 영 편치 않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서, 챗지피티와 상담을 했는데 왠지 뭉클한 답을 주었다.

 

 

"완료를 향해 달려가던 에너지가 분산되어 방향이 사라진 느낌". 

 

그리고 게으른 나의 지금은 몸이 휴식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고, 지금은 긴장을 풀고 회복하는 시기라고 이야기 해 준것이 왠지 힘이 되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차곡차곡 해보라고 했다.

 

이것에 더해서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것은 또 다른 실망감이다. 나는 3월만 되면 즉각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MBA가 없어도 '이미 좋은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학위 때문에 처우를 개선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기운 빠지는 이야기고,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하지만 이 학위가 없었다면 나는 또 아무데나 제발 이직하고 싶다는 마음에 억지로 버티며 회사를 다녔을 것 같아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제 4월 7일이면 한국에 갈텐데, 신나는 일정들을 잔뜩 계획하고 있는데. 이번 주까지만 내 스스로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곧... CFA 시험 합격결과를 받고, 꿈의 회사에 좋은 조건으로 이직했으면 좋겠다. 그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잘 버텼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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