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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3주차 회고 | 기대를 안하면 된다

일상/회고

by 띠용- 2023. 8. 2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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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바빴다. 학원을 스킵해야 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동료들과의 마찰도 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잘 대처했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있었나보다. 주말까지 이렇게 곱씹어 생각하고 있고, 벗어나고 싶어도 다시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니 말이다.

 

어떤 사람이 '네가 감히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라고 말했던 것.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숨 넘어가게 바쁜걸 알면서도 귀찮은 일을 본인 팀이 아닌 나에게 굳이 떠넘기려고 했던 것.

 

나를 쫓아오는 그림자 같은 두가지 갈래에 대해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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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나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발언에 대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하면 맞는 말이다. 나는 제너럴리스트 포지션이기에 이렇다 할 전문 분야가 없다. 외국계에서도 Executive in Residence 라고 부르는 포지션이 있던데, 딱 그런 느낌이다. 이것도 저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니 이곳저곳 투입되어 액션을 취해야하지만, 본인 영역이 확고한 곳에선 그게 offensive 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번에 발생했던 마찰은 그가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 나의 가장 높은 한국인 상사가 나에게 직접 지시한 일이기에 나는 직접, '최대한 빨리' 대응했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책임자와 최대한의 공유를 했는데 전혀 다른 팀의 독일인인 그에게 닿지 않았을 뿐이다.

 

1. 앞으로의 커리어 패스에 있어서 제너럴리스트는 최대한 기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너무 자신만의 영역이 확실한 기업에서도 일을 했었고, 그곳에선 되려 내 영역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해지고 다른 영역에 대한 내용을 얻기가 어렵다는 고충이 있었지만 반대의 경험을 해보니 그 직무와 직군에 대한 비전만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게 훨씬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전문성을 기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대학원을 가기로 한 결심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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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내 정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상사에 대하여

 

내 상사는 아니고 법무팀의 팀장에 대한 이야기다. 그도 독일인이고 경험이 농후한 중년의 변호사이다. 같이 점심을 먹자거나 저녁을 먹자거나 개인적으로 밤이고 주말이고 연락을 해왔는데, 내게 해오는 주요 질문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정서에 대한 것이다. 책이나 글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살아있는 인사이트를 나를 통해서 얻고, 그것을 분석해서 한국 매니지먼트를 이해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간 그러려니 이해는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뜨악 하게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한국 탑 매니지먼트와 그의 펠로우가 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나는 현업에 있고 변호사들과 늘 소통하고 있기에 그가 얼마나 팀 관리에 엉망진창이고 결코 직접 일에 뛰어들지를 않는지 잘 알고있는데, 팀원들이 영혼을 갈아 해낸 업무 성과들을 잘 꿰매어서 보고를 기깔나게 하는 모양이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 했다. 아 그래서 그가 그렇게 본인 팀원들에게서 존중을 얻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그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구나, 등등.

 

숨 넘어가게 바빴고 주말에 그의 연락에 답해줄 의지도 없었기에 주중 밤에 온 연락은 다음날 아침 9시에, 주말에 온 연락은 월요일 아침 9시에 답장을 했더니 이제 좀 납득을 하시고 연락이 안온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다는데도 (그걸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계속해서 귀찮은 업무를 나에게 떠넘기는 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개인적인 업무를 최대한 불쌍한척 호소하며 그에게 도움을 구하겠어, 복수심에 불타기도 했지만... 한숨 돌리고 보니 다 그냥 피식 웃음이 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는 잘 모르고, 어떤 의미로든 폄하할 의도는 없다. 다만 개인이 더이상 직업적으로 추구할 야망이 없을 때,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이 버거울 때 어떤 상황이 되는거구나 이해하게 됐다.

 

이제 나는 산전수전 다 겪었고 순진하지 않다고 믿었는데, 그들의 눈엔 '본인이 알거 다 안다고 믿는 순진한 어린 애'로 보이지 않았을까. 나는 내 나라 한국이 엉망진창인 거고 그곳을 벗어나면 온전히 나의 삶과 나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 순진한 나의 기대였다. 그냥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고 이렇겠지 기대를 안하면 실망도 없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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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며, 같이 점심먹자는 동료의 연락에 일정을 조율하다 금요일 오후에 잠깐 커피챗을 하기로 했다. 불과 몇주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커피챗 시간을 가지면, 그 보내버린 시간만큼 엑스트라로 일하면 내 업무량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주말까지 매일 일해야 커버 할까말까 한 수준이 되어버렸기에 그러자고 했다. 어차피 주말에도 해야할 일인데 그래 그러자.

 

그녀의 오피스룸에 커피를 들고 들어가니 락앤락 통을 꺼내는 그녀. 그 안엔 형형색색 젤리가 가득 들어있었다. 순간, '보통은 그냥 먹고 남은 젤리 봉지를 잘 접어두지 않나.. 몸에 밴 습관마저 철저하다' 생각했다. ㅋㅋ

 

위의 이야기들과 나의 롱디 남친 스토리를 그녀에게 주저리 주저리 털어놨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가지 질문을 했는데, 무작정 편을 들어준다는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서포팅 업무가 너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그건 회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업무이 그게 없으면 모든건 엉망이 된다고 말한 부분. 그건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은근히 말하는 것이다.)

 

그리곤 내가 꼭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줬는데 고마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눈물 꾹 참았다.

 

  • 더 할 나위 없이 잘 하고 있다. 너의 존재에 고마워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고 있지 않느냐.
  • 다른데선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거다.
  • 나한테도, 지금까지도 덜 감정적으로 대응하려고 애써야하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 아침에도 화가 나서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지금 이메일 쓰지말고 전화해라." 조언해주더라. 차분하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다. 나도 어릴 땐 내가 여자라서, 금발이라서 받는 부당한 편견과 과소평가가 너무 힘들었고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 많이 애썼는데 그냥 내가 나이를 먹으니 해소가 되더라.

 

인생 선배로서 정말 고마웠다. 사고뭉치 강아지 팀버 맘으로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팀버가 성장중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했는데, 그녀가 이번주 힘든 시간의 나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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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회사 사람들 중에선 몇 사람에게만 했다. 내 상사, 법무 팀장, 변호사 친구, 퇴사한 구 동료.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배우자 비자를 내주지 않는 한 그의 독일 이직은 불가할 것 같다는 말에 내 한국인 상사는 서둘러 다른 남자 찾으라는 말을 했었고, 대부분은 힘들겠다 대단하다는 중립적인 말을 해왔는데, 그녀는 때론 지독하게 practical 해져야 편해지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일로 시작해서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번진 복잡했던 한 주.

 

 

....그냥 지금 할일에 우선 집중해보기로 한다. 끝나가는 여름을 보며 장만한 비타민 D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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