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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영화 하도 여기저기서 후기가 많이 들려와서 보고싶단 생각은 했지만 무시무시한 내용을 자막 없이 과연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노파심에 아직 영화관에 가려는 시도도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오펜하이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일을 했으며 그 안에는 무슨 문맥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
20세기 초 패션 사업을 하던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자라나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독일 괴팅겐 대학으로 가서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자신의 포텐셜을 마음껏 뽐낸 그. (그 당시에 괴팅겐이었다면 독일어도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했을 것 같은데, 그가 어떤 외국어를 얼만큼 구사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물론 이론 물리학자들의 연구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그닥 필요하지는 않았던건지, 아니면 영어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던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부분에서 다시한번 외국어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됐다).
그러다 미국이 전쟁 중 국가 차원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되면서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 중 하나로 스카웃이 된다. 엄청나게 똑똑하다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 어려운 것을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눈에 띄어 단번에 그 프로젝트의 리더로 발탁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그의 팀은 원자폭탄 발명에 성공한다.
이 다큐를 보면서 든 몇가닥의 생각을 정리해봤다.
1. 승리를 위해 역사상 해본 적이 없는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기꺼이 투자하는 미국의 정서 - 어쩌면 도박과도 같고, 어떻게 보면 철저히 결과 지향적인 이 사고방식이 능력주의와 자본주의의 기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승리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서, 성공률이 보장된 바 없는 프로젝트에 이만큼의 자원을 투자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람들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파괴적인 무기가 사람을 죽일테지만, 그 파괴성이 전쟁을 막는데에 기여할 것이라는 철학
오펜하이머는 살상 무기가 얼만큼의 파괴력을 발할 수 있는지 눈으로 보여주면, 그것이 반대로 더 이상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대대적인 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후 한 연설에서, 당시 인도 철학에 심취해있던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Hindu scripture, the Bhagavad-Gita)
Vishnu is trying to persuade the Prince that he should do his duty and to impress him takes on his multi-armed form and says,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죽음이 되어 돌아온 생명의 신이란.
어쩌면 그의 생각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살상 무기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도, 자칫하면 푸틴이 핵 폭탄 발포 버튼을 눌러버릴 것이라는 공포를 갖게된 것도 히로시마 나가사키 폭탄을 터뜨린 후 그 참혹한 실상을 보고 난 후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제패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로부터 무조건적 항복한다는 메세지를 받는 것이 미국 정부의 목표였기 때문에, 더욱 커다란 참상을 눈으로 목격하기 위해 땅이 평탄하고 어느 정도의 인프라가 갖추어진 도시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펜하이머는 어느 고도에서 어떻게 폭탄을 투하해야 더 큰 폭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지 계산까지 했다고 한다.
3. 헝가리 유대계 미국인 이민자가 느꼈을 전쟁에 대한 공포
그는 헝가리 유대인 계 이민자 출신이다. 이 다큐에선 그의 아버지가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오펜하이머가 어렸을 때부터 유복한 집안이었다고 설명하고 넘어간다. 집에 반고흐의 그림 세 점과 피카소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고만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친척이, 아버지의 친구들이, 지인들이 나치 독일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았을리는 없다. 영화의 포커스가 명확히 다른 방향에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삭제한 것이겠지. 하지만 한다리 건너면 끔찍하게 죽음을 목격했거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손이 맞닿아 있는 환경에서 전쟁이라는 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가 사랑하는 과학으로 그의 가족과 그가 놓인 환경 속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의 고통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인생의 의미이자 목표가 아니었을까.
4. 오펜하이머의 영화 제작, 개봉 시기가 만들어내는 프로파간다
코로나 시기가 지나가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시작된지 1년이 되어간 지금 시점에 개봉한 영화. 그러니까 핵 보유국인 러시아는 세계의 적이고 우리 모두는 그 적에 대해 각종 제재 조치를 발동할 충분한 명분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살고 있으면 지겹게도 많이 보는 그런 종류의 프로파간다.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이제는 그들의 의도가 눈에 선하다.
대의를 위해 고민하고 싸웠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고단한 하루하루에 힘겨워했던 나의 나날들을 돌이켜보기도 했다. 나는 이게 뭐라고 이 일 저 일 사소한 것들에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며 고통받았나.
한편으로는 대의를 위해 대중과 대통령 앞에서 정치적 방향성을 논하기까지 이론 하나, 그 안의 서브 이론, 서브서브이론, ...., 작은 방정식 풀이 과정의 오답을 찾는 사소한 과정을 무수히 반복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내 하루의 사소한 부분에도 조금 더 애정을 쏟아야지 생각했다. 무슨일이 있든지 어쨌든 계속해서 걷고 걷고 또 걷다보면 세상에 조금은 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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