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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3주차 회고 | 만연한 가을

일상/회고

by 띠용- 2024. 10. 28.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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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는데 울컥할 것만 같은 계절. 공원 벤치에 누워 눈에 보이는 이 풍경을 엄마에게 보냈더니 “노란 잎은 엄마, 초록 잎은 너, 파란 하늘은 너의 미래” 라고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란 잎과 같은 그런 감정이었다는게 왠지 서글펐다.

오늘부로 서머타임도 끝이 나서 이제 내가 있는 곳은 한국과 8시간의 시차가 난다. 서머타임이 끝났다고, 저녁 시간이 되면 남은 햇빛도 모조리 가져가버려서 암흑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친구가 귀여운 담쟁이 덩굴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한국의 가을을 맞이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독일의 가을은 샛노랑 그 자체이다. 온통 엄마야.

 

이번주 회사에선 정말 끝네주게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어제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제 난 이만 퇴사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오늘 만난 두명의 친구에겐 이제 나 진짜로 (이직 플랜 없이 그냥) 퇴사하고 쉴거라고 엄포를 두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쉬니 또 이만하면 괜찮은 것도 같아졌다. 당장 일 안하면 이 무시무시한 월세는 어쩌지, 사고 싶은거 못사고 먹고 싶은거 못먹는 일상은 너무 고달프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일을 하긴 해야지 정신 차리게 된다. 그리고 이번 주말, 이런 저런 핑계로 공부 안하고 쉬기만 했더니 어서 월요일이 되어서 원래 루틴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떤 친구는 퇴사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너 성격상 막상 퇴사하면 한달도 안 지나서 지루해 할걸" 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일리가 있다.

날씨가 이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도 나도 관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보고싶고, 옛 친구들이 그립고, 옆구리가 시린 계절이 와버린 것이다. 사실 며칠 전부터, 오래 만났던 옛 짝꿍은 드문 드문 모바일 앱으로 한국어 공부하는 스크린 샷, 술 먹고 있다고 술잔 사진, 이런 "무난한"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지우지 않은 넷플릭스 속 그의 프로필을 찍어 답장으로 보냈다. 사실 지우려면 무던하게 지울 수 있는데, 그냥 냅뒀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내 머릿속은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꽉 차버렸다. 회사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싫고 내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기 싫고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싫어 도망치기 바빴던 한주엔 새로운 고민거리를 들이 밀었다… 이 사람은 어떨까, 일 말고 내 인생에 중요한게 많지 않을까, 궁금해했다.

왜냐하면 나는 연약한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아직 불편하기 때문이다. 목요일에 투자금융실 전무님과 개인 면담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아직 그 팀으로 포지션을 옮길 준비가 안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내가 해석한 결론은 그러하나, 사실 멘토링을 받은 것과 가까웠다. 지금 포지션에서 내가 맘에 안드는게 뭔지, 무슨 일을 하고싶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나의 코멘트에 대해 본인의 의견과 경험을 나누어주셨다.

 

1. "저는 전무님처럼 이렇다할 백그라운드가 없어서 프로필이 필요해요" 라고 한 말에, 본인도 예전엔 프로필을 좇았었다며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길 하셨다. 결국은 이 회사에 임원진이시니, 회사의 이익을 대변해서 사무적으로 하신 말씀일 수도 있겠고, 진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 공대 수석졸업, MIT 수석 졸업 후 뉴욕에서 investment banker로 각종 유명한 금융계는 다 돌다 서른 넷에 임원 직급 다신 분이다. 당시의 그의 신념처럼 프로필을 좇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와계셨을까?

 

2. "너는 정말 똑똑한 아이야. 그런데 공부를 더 해야해." 라는 이야길 여러번 하셨다. 상대의 의견과 충돌하는 이야기를 할때 미리 애둘러 흔히 하는 칭찬같은 것일 수도 있고,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 느낌은, 그분은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기 때문에 그 이하는 다들 적당히 똑똑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이 세계에서 아주 기본적인 용어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물으셨는데, 나는 전혀 답하지 못했고 그건 머릿속에 두고두고 부끄러운 순간으로 남을 것 같아.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고 조급해하지 마" 라며 본인 책장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스와 관련된 책 두권을 주셨다. 목차를 하나씩 훑어보곤 볼펜으로 이건 보지 말라고 엑스 표시, 이건 중요하다고 별표까지 해가면서 "공부하라고" 강조하셨다. 열심히 공부하고, 한달에 한번씩 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애정이 없으면 애초에 쏟지 않았을 시간이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벌거벗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도하지 않았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 감을 잡기도 힘들었을 것이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턱없이 모자란 내 모습에 실망감이 몰려왔다. 그것이 내 불편한 마음의 원천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방아쇠는 당겨졌고 시간은 간다. 모자란걸 알았으면 채우면 되고, 일도... 못하겠으면 때려치고 공부할란다. 우선순위는 자격증과 학교 졸업이니 우선은 하라는 그 "공부" 보단 내 공부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는다. 내 그릇에 미친듯이는 못해도, 우직하게 발도장 꽝꽝 찍으며 걸어가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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