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

일주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할 일이 많아지니 매일 아침 그 날의 할 일 목록을 점검하고, 하루의 끝자락에 다음 날 할 일 목록을 정리하지 않으면 일의 양에 압도되어 전날부터 미리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해나가다 보니 이제는 하나씩 할 일을 지워나가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낸다. 그래서일까, 꾸역꾸역 해오고 있던 독일어 공부에 요즘 구름이 걷히는 듯 아하! 깨닫게 되는 뿌듯한 순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무리한 목표라고 생각했고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던 것이 불과 한달 전인데, 어쨌든 꾸준히 하다보니 조금은 자신감도 생기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만사가 그런 것이겠지, 그저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멀리 와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일상/회고 2023. 8. 6. 22:45

이번 주 내내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날이 제법 쌀쌀하다. 한국은 장마가 끝나고 한참 무더위라는데, 더워도 추워도 늘 햇빛이 쨍한 그 파란 하늘, 이제 점점 더 그리워질 일만 남았다. 왜냐하면 여기는 이미 여름이 끝난 것 같기 때문에... 출근길 옷을 고를 때에도 니트 가디건은 필수. 사실 요즘은 뭘 입을까 고민할 기력도 없어서 회사에서 제작한 집업을 주로 입는다. 지난 주 어떤 날은 퇴근하는데 어떤 분께서 '아니 젊은 사람이 그런 옷 입고다녀' 라고 하시기에 '그럼요, 학원에 우리 회사 홍보해야죠' 하는 답변으로 무마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나의 에너지가 다른 곳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인건지. 이 회사에 처음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항상 블라우스, 치마에 가끔 힐도 신고 다녔었는데. 예쁘게 '보이고' 싶..

일상/회고 2023. 7. 30. 16:39

러시아 친구를 만났다. 대학교 때부터 아주 가깝게 지냈던 친구이지만 친구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생긴 후로는 예전만큼 속속들이 일상을 공유하지는 못했던 터라, 아주 오랜만에 본 거였는데도 지난달 쯤엔 봤던 것처럼 친근한 얼굴. '아니 이게 누구야, 이게 얼마만이야!' 러시아어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 식당 주변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힐끗 우리를 쳐다본다. 그들도 러시아어를 쓰는, 혹은 러시아어를 이해하는 사람들 (이민자 n세대라든지)이라는 뜻이다. 그 간의 인생 업데이트 부터 시작해서, 어제 베를린에 엄청 큰 행사가 있었던 터라 오늘 우리가 보는 길거리 쓰레기 대잔치는 예외적인 상황인 거라고 애써 부연설명을 덧붙여가며.. 우리는 쌓아 왔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친구는 3살 아이와 아내를 위..

일상/회고 2023. 7. 24. 04:24

어른이 되고 나서 공부를 하려고 했더니 몇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체력이 확실히 다르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보다 새삼스럽게 놀랐던 점은, 체력이 떨어졌을 때 이제 나는 그게 '체력이 떨어졌다는 신호' 라고 알아차린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땐 밤 11시쯤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부엌으로 가서 간식부터 와구와구 먹곤 했다. 그러니 점점 살은 찌고 몸은 무거워지고, 교복은 안맞는.. 어쩌면 지극히 전형적인 학창시절을 보냈던 10대의 나. 내 몸이 지쳤던 것인데 쿨하게 잠좀 자고 푹 쉰 다음 공부할 용기는 없고 (모든 시간을 쪼개서 공부만 했던 것도 아니면서), 할 일은 언제나 산더미 같이 쌓여있으니 그렇게라도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발버둥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안다. 아직까지 다행히 머리가 안돌아간다는 느..

일상/회고 2023. 7. 17. 01:26

이번 주, 참 고된 한 주였다. 독일어 수업이 개강을 해서 월, 화, 목은 후다닥 퇴근하고 밤 10시까지 수업듣다 집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다가, 그 중 수요일은 회사에서 큰 행사가 있어서 아주 신나게 놀아야 했다(?) 그 와중에 행사 참여한다고 예상치 못한 방문객들이 와글와글 오다보니 정신은 없고, 독일 팀원들도 방문했으니 그들 챙기느라 + 온라인 미팅들 대면으로 전환해서 미팅룸 왔다갔다 하며 루틴 업무 챙기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이런 일상을 맞이했으니 지쳤는지 나도 이번 주말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푹 잤다. 그래도 다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주변의 생활 대화들도 귀기울여 듣게 되고,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독일어를 쓰게 된다. 길을 다닐 때도 새삼스레 눈에 ..

일상/회고 2023. 7. 10. 06:51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곡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내가 러시아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엄청나게 부유한 문화 자산과, 그것을 향유하는 문화, 정서 때문인데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러시아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곡이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잘 알겠듯이 도부터 파?까지 한 손으로 칠 수 있을 정도로 손이 컸다는 라흐마니노프는 곡도 자신만 칠 수 있을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곡들 중에서도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좋아한다. 최근에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 곡으로 아주아주 큰 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의 인터뷰 영상과 연주 영상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익히 들어온 녹음본과는 또다른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일상/회고 2023. 7. 2. 03:23

다크나이트 시리즈 영화를 봤다. 처음엔 히스 레저의 다른 영화(a knight’s tale)를 통해 본 그의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그의 연기가 대체 어떻길래 레전드로 회자되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었다. 다 보고 나니 그의 연기는 말 할것도 없고, 그보다 다크나이트 영화를 통해 생각했던 몇가지 포인트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 히스레저, 조커,…”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영화를 본 건 처음이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조커 호아킨 피닉스와는 다르게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에 솔직히 놀랐다. 캐릭터 연구에 진심이었고 조커의 대사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하던데, 정말 조커 연기 때문이었을까, 불면증 신경안정제등 많은 약을 한번에 복용하다 문제가 생긴것이었다고 한다. 너무 빨리..

일상/회고 2023. 7. 2. 02:53

지겹게 롱디 중인 남자친구가 놀러왔다. 덕분에 나는 그가 머무르는 2주 동안 휴가를 내고, 일주일에 꼭 참여해야하는 미팅들과 태스크만 챙기면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다. (이것도 여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나이들수록 직장에서의 책임도 커지는 법이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아무튼 덕분에 막상 살면서도 즐기지 못했던 베를린을 만끽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방문할 때마다 산책하면서 마주했던 예쁜 풍경들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집 주변을 신나게 산책하며 '아 이게 여기였구나' 하며 눈도장을 찍고 있다. 한 블럭만 건너가면 다른 풍경, 또 한 블럭 지나면 공원. 드문드문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냥 앉아 있다. 사색을 하는건지 아님 뭔가를 하고 있는건지 모르..

일상/회고 2023. 6. 21.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