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기

그가 온다. 짝꿍이 타지에서 날 보러 온다. 일주일 겨우 오는 것일 뿐더러 나는 휴가 하루도 낼 수 없는 상황이라 그는 그냥 나와 며칠 저녁밥 같이 먹으러 온다. 이 사실을 생각조차 안하고 살다가 문득 이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떠올리면 신이 났다. 오늘은 그를 맞이할 생각에 신나게 대청소를 하고 지쳐 소파에 앉아선 그와 함께 할 일을 황급히 정리하기도 했다. 그가 이 곳 공항에 착륙하는 18시가 가까워질 수록 더욱 신이 났다. 뭘 하면 좋을까, 뭘 먹일까, 어딜 잠깐 다녀올까.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공항에 마중을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우선 출발하기 전 엄마가 보낸 커다란 소포 박스를 해체해서 납작하게 만들어 종이 수거함에 버렸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

일상/회고 2023. 10. 2. 00:38

오늘은 4천여명이 참여했다는 베를린 세계마라톤 대회의 피날레가 있는 날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늑장부리다 오늘 아침엔 늦잠 실컷 자고있었는데 갑자기 음악소리가 들려 깼더니, 마라톤 선수들을 위해 빅밴드가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창문으로 한참 내려다 보다 이왕이면 커피를 한잔 내려서 직접 음악과 대회를 보러가기로 하고 내려갔다. 그리고 공연과 마라톤 대회를 보면서 든 생각들을 간단하게 적어본다. 선두 쪽에 있는 사람들은 표정조차 하나 변하지 않고 기계처럼 뛴다. 50킬로 끝자락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구간을 뛰는 것 같았다. 지켜보는 내내 앞이든 뒤든 어느 한 사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맨 앞 10분 이상은 흑인 남자들이 지나갔고 한참의 공백 뒤에 또 흑인 선수들, 그리고 나선 백인 남자, 그리고..

일상/회고 2023. 9. 25. 06:07

머리를 고쳐 묶으려고 빗질을 하면 한움큼씩 머리가 빠진다. 샤워하기 전에 다시 머리를 빗으면 또 한움큼. 샤워 하면서 또 한움큼. 머리를 말리면서 또 한움큼. 말리고 다시 정돈하면서 빗질을 하면 또 한움큼... 무서울만큼 머리가 많이 빠지길래 머리가 너무 길어서 그런가 싶어 깨나 많이 길이를 잘라냈는데도 여전히 계속해서 머리가 빠진다. 오늘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정수리를 들여다보고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 타고 다니는 가르마 라인이 휑하게 넓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망연자실해서 유튜브에 "20대 여성 탈모"를 검색해서 몇가지를 들여다 보았다. 간사한 나는 더 심각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고 그제서야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1) 머리를 잘 말릴 ..

일상/회고 2023. 9. 18. 07:08

예전엔 툭하면, 특히 음식만 보면 휴대폰부터 들이미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불쾌했다. 왜 저렇게 유난인가, 먹는 것 가지고 호들갑 떠는건 촌스러운 일이라고 업신여긴 적도 있었다. 모두가 하는건 난 하지 않겠다는 반항심 때문에 남들이 다 사진찍을 때 안찍다버릇 해서 그런가, 매주 주간 회고를 할 때마다 올릴 사진이 없어서 몇 분은 고민을 한다. 내 휴대폰 앨범엔 계획 인증 스터디 하느라 찍은 내 계획과 실천 인증사진, 걷다가 잘못눌러서 찍힌 이상하게 흔들린 정체 불명의 사진, 아님 일하다가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 서류 보고 궁금해서 구글 번역기 돌린 스크린샷 뿐이다. 이럴 때마다 사진을 더 많이 찍어야겠다 생각하고도 막상 일상을 살다보면 또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주간 회고에 올릴 사진이 없는 사이클..

일상/회고 2023. 9. 12. 05:33

한게 아무것도 없어서 쓸 내용이 없다고 말하려던 오늘의 주간 회고. 잠시 돌이켜보니 학원 수업이 종강한지 딱 일주일이 되었다. 아, 그럼 그간 고생한 내 몸을 위해서 내 정신이 휴식을 강요한 건 아닐까 정신승리를 해본다. 새로운 팀원이 합류한 이후로 나에게 감정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입지가 좁아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경력은 모두 비슷하지만 내 나이가 가장 어리기 때문에 막내 취급을 당하는거라는 억울함, 앞으로의 회사생활이 녹록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여러가지 형태로 몰려온 부정적인 감정들에 어떻게 해소해야할지 모르고 예전처럼 다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몰아서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간 해야할 일들은 아주 많이 밀려버렸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여럿 느낀게 있다. 넷플릭스 Manifes..

일상/회고 2023. 9. 4. 04:14

이렇게 하루 종일 잠만 잔게 얼마만인지.. 금요일 회식을 마치고 집에 와선, 토요일은 하루종일 잠만 잤다. 눈 떠서 시간 확인하고 자고, 밥먹고 또 잠들고.. 토요일도 눈 떠보니 7시라서 좀 더 자자, 눈 감았다 뜨니 12시였다. 아차 싶어서 얼른 씻고 점심 먹고 짐 챙겨서 정말 오랜만에 집 근처 카페로 왔다. 자격증 준비할 당시에 매일같이 들락날락 했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이 너무 많아져 와이파이가 안되기 시작하더니 날이 무더워지며 도저히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내부가 답답해서 안간지 오래였는데 이번 주말같이 늘어지는 날에는 일단 환경을 바꾸어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정말 오랜만에 다시 왔다. 다시 오니 아이스 바닐라 라떼 메뉴가 생겨있고(!!! 5.7유로라니 심하게 비싸긴 하지만 어쨌든 장족의 발전)..

일상/회고 2023. 8. 27. 21:57

이번주도 바빴다. 학원을 스킵해야 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동료들과의 마찰도 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잘 대처했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있었나보다. 주말까지 이렇게 곱씹어 생각하고 있고, 벗어나고 싶어도 다시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니 말이다. 어떤 사람이 '네가 감히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라고 말했던 것.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숨 넘어가게 바쁜걸 알면서도 귀찮은 일을 본인 팀이 아닌 나에게 굳이 떠넘기려고 했던 것. 나를 쫓아오는 그림자 같은 두가지 갈래에 대해 생각을 조금 정리해보려고 한다. . . 첫째, 나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발언에 대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하면 맞는 말이다. 나는 제너럴리스트 포지션이기에 이렇다 할 전문 분야가 없다. 외국계에서도 Exec..

일상/회고 2023. 8. 20. 22:17

오펜하이머 영화 하도 여기저기서 후기가 많이 들려와서 보고싶단 생각은 했지만 무시무시한 내용을 자막 없이 과연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노파심에 아직 영화관에 가려는 시도도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오펜하이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일을 했으며 그 안에는 무슨 문맥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 20세기 초 패션 사업을 하던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자라나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독일 괴팅겐 대학으로 가서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자신의 포텐셜을 마음껏 뽐낸 그. (그 당시에 괴팅겐이었다면 독일어도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했을 것 같은데, 그가 어떤 외국어를 얼만큼 구사했는지..

일상/회고 2023. 8. 13. 18:48